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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향가의 주요 담당층

by 정보공유장인 2023. 1. 18.

 향가의 담당층은 승려 또는 화랑도를 중심으로 하는 당시의 귀족층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향가를 풍류도와의 사상적 연관 속에서 보려는 시각이 나타나면서, 향가의 담당층이 화랑이나 낭도가 중심이고, 승려라 해도 화랑에 소속된 낭도승이 중심이라고 보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향가라는 민족시가를 이른바 풍류라는 민족 고유의 사상과 연관지어 이해하려는 노력은 원칙적으로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풍류가 오래 지속되어 신라인에게는 습속 차원으로 수용되었으며, 민족의 생활 속에서 체질화되어 녹아들었다고 볼 때, 당대의 산물인 향가 역시 이와 관련짓지 않고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향가를 풍류사상과 연관지어 이해하려는 입장과, 화랑이라는 특수한 제도의 형성,  발달, 쇠퇴의 과정에 따라 그 부침을 이해하려는 시각은 엄밀히 말해서 다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최행귀의 발언이 음미할 만하다.

 우리 인자의 나라에서는 마사가 문칙, 체원과 함께 전아한 곡을 짓기 시작했고, 원효는 박범, 영상과 더불어 현묘한 노래의 발판을 만들었으며, 또 정유, 신량 같은 현자들은 구슬 같은 시운을 잘 읊었고, 순의, 대거와 같은 준걸들은 보석 같은 시편을 몹시 잘 지었다. 모두 구슬 같은 언어로 꾸미지 않은 것이 없어 그 청아한 노랫말은 감상할 만하고, 백설곡과 같은 음악은 그 묘한 음향이 참으로 들을 만하였다.

 이 글은  최행귀가 균여의 향가를 한시로 번역하고 나서 거기에 붙인 서문의 한 대목이다. 중국의 한시에 견주어 향가가 전혀 손색이 없음을 역설하면서, 우리의 향가가 삼국시대와 통일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전개되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조망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고려전기 한 지식인이 바라본 향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최행귀에 따르면, 향가는 화랑이나 낭도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또한 화랑의 성쇠에 따라 부침을 겪은 것도 아니었다. 향가가 화랑도와의 특수한 연관 속에서 생성, 발달해왔다면 아마 이러한 글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거론한 승려들은 비록 원효, 대거 외에는 전혀 알려진바 없지만, 정황상 화랑과 특별한 친연관계에 있는 승려는 아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어를 갈고 닦다'는 의미의 "마사", '문장의 법칙'이라는 의미의 "문칙", '문체의 으뜸'이라는 의미의 "체원" 등은 시문에 뛰어난 승려의 별호인 듯한데, 아마 이들로부터 향가는 본격적인 자기표현의 시가양식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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