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문학은 개인 창작문학의 출현, 공통문어에 의한 기록문학의 성립, 보편종교의 전래, 상하층문학의 분화 등이 특징이라는 점에서 원시, 고대 문학과 구별된다. 삼국시대에서 남북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한문학은, 동아시아문화권에 편입하여 자국의 문학을 발전시킨 중세문학의 첫 단계에 해당한다. 불교 공인, 율령 반포 등을 통한 정치 이념과 체제의 확립, 한자 수용을 통한 공통의 문화적 기반 확립 등은 중세문학을 알리는 지표들이다.
한자가 한반도에 전래된 시기는 기원전 300년 전후로 추정된다. 한자의 수용은 기록문학의 정착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이로써 고대문학에서 중세문학으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고대국가의 성립을 전후로 한 시기에 이르러 한자가 전래됨으로써, 그 전시대 구비문학의 일부가 문자로 기록되고 한문문학이 출현한다. 그리고 삼국시대와 남북국시대에는 구비문학과 병행하여 향가 같은 차자표기 문학이 형성, 발달하고, 귀족과 육두품 지식인 등을 중심으로 한문문학이 성장하기에 이른다.
이와같은 문학사의 전환과 변화를 추동한 동력의 하나로 무엇보다 민족과 지역을 넘어 동아시아문명권에 보편적으로 통용된 문자언어로서의 한자를 들 수 있다. 우리 민족은 한자를 적극 수용하여 한자문화권을 형성, 발전시키고 자국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였다. 한문의 어법을 그대로 따르기도 했지만, 한국어의 어법과 구조에 맞추어 변개해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 변형의 초기 형태는 6, 7세기경에 작성된 '임신서기석'이다.
초기 변용방식을 더울 발전시켜, 우리말의 어법과 구조에 걸맞게 한자를 활용하여 표기한 향태가 향찰이다. 향찰은 단어문자인 한자를 차용하여 음절문자 또는 음소문자처럼 사용했으니, '혁신적 변용'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방식은 이 시대의 민족어문학을 대표하는 향가를 표기하기 위해 나타났다. 고유어를 표기하는 적절한 수단으로 향찰을 고안해냄으로써, 민족어문학으로서의 향가가 즉흥적으로 불리고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개인이 창작하는 기록문학으로 정착,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한편 향찰식 표기와 함께 한문 문장을 그대로 사용하는 방식은, 이 시기 중세문화의 이중적 언어체계를 반영한다. 이러한 이중적 언어체계는 한글이 창제되면서 더욱 확대되었으며 19세기말까지 존속했다. 중세문학시대에는 보편문어로서의 한문과 우리의 독특한 언어체계가 이원적으로 공존하는데, 이 시기는 그 첫단계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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