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는 삼국시대에서 통일기를 거치면서 생성, 전래된 자국어 시가 전반에 대한 명칭으로, 단일한 갈래가 아니라 여러 층위의 작품군과 시가양식을 망라한다.
향가라는 용어가 처음 발견되는 문헌은 '균여전'과 '삼국유사' 등 고려시대에 씌어진 문적으로, 삼국시대~통일기에도 이 명칭이 실제 쓰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향가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 문헌은 '삼국유사'이다. 여기서 향가는 단지 자국어 시가라는 뜻 외에 몇가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을 요하는 텍스트가 '월명사도솔가'이다.
국난을 타개할 산화공덕을 베풀라는 경덕왕의 당부에 월명사는 '자신은 화랑의 무리에 소속된 미천한 신분의 사람인지라 향가는 할 수 있지만 전아한 양식의 범패는 모른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향가는 범패보다 훨씬 뛰어난 감동을 불러일으켜 국가를 위기에서 구한다. 일연은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신라사람들이 향가를 숭상해온 지가 오래인데, 향가가 이처럼 천지귀신을 감동시킨 일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논평한다.
이 이야기는 당대인들의 향가에 대한 중요한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중국에 대한 변별의식, 나아가 민족의식이라 이라 이를 수 있는 모종의 의식이 향가 창작의 이념적 기반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향가가 천지귀신을 감동시킬 정도로 커다란 감화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엇보다 향가가 민족어를 바탕으로 당대인들의 폭넓은 애호를 받으며 민족의 생활에 깊이 뿌리 내렸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실제로 향가의 향유층은 한시에 비해 훨씬 두터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현전 자료만 보더라도 왕과 귀족에서 하층의 낭도와 승려, 그리고 무명의 민중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이 망라되어 있다. 이렇게 폭넓은 애호를 바탕으로 향가는 점차 개인의 감정과 정서를 표현하는 세련된 창작시가로 발전하면서 수준 높은 서정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향가의 형식적 다양성은 구수의 많고 적음에 그치지 않고 시상 전개구조의 차이까지를 포괄한다. 이 가운데 특히 10구체 형식의 향가를 독립시켜 흔히 사뇌가라고 부르는데, 10구체 향가는 향가 가운데서도 특히 당대의 귀족, 지배층의 정신세계를 반영하는 시가양식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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