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의 선조인 여러 종족들이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일대에 정착한 시대에는 이미 다채로운 서정가요들이 발달해 있었다고 생각된다. 중국의 사료들을 통해, 우리는 제의적 맥락과 연관이 깊은 고대가요 외에 그와는 성격이 다른 서정적 시가 또한 일찍부터 발달해 있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이 시대 노래의 잔편으로 전해지는 '공후인'이나 '황조가'를 통해 우리는 고대 우리 민족의 서정가요 수준이 후대가요에 비해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절실한 비탄을 담은 서정시인 '공후인', 유리왕이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돌아오는 길에 나무 밑에서 쉬다가 꾀꼬리들을 보고 느낀 바를 노래했다는 '황조가'는 간결하면서도 직절한 표현력을 갖춘 서정시라고 이를만하다.
고대가요가 노래하는 이같은 서정세계는 '고려사'나 '삼국사기'가 전하듯이, 삼국시대 우리말 노래들에 그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태평성대의 화락함을 찬양하는 '동경'이란 노래를 비롯하여, 승전의 기쁨을 노래한 '장한성', 하루 빨리 전쟁이 사라지고 태평한 시절이 오기를 희구한 '무등산', 부역 나간 남편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내용의 '정읍사', 자식을 버린 아버지를 원망하며 부른 '목주',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변치않는 사랑을 노래한 '지리산',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신비로운 인연을 주제로 한 '명주' 등이 보여주는 삼국속악의 세계는 '공후인'이나 '황조가'에서 노래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이들 삼국속악은 그 성격에서 삼국시대~통일기의 향가와 어떻게 변별될까? 남아 있는 자료가 영성하여 상세히 논의할 수는 없으나 다음 글을 통해 실마리를 마련할 수는 있을 것 같다.
신라, 백제 및 고구려의 음악을 고려가 아울러 써서 악보로 편성하였다. 그래서 여기에 붙여 기록한다. 가사는 다 우리말로 되어 있다.
'고려사'의 편지가 '악지' '삼국속악'에 붙인 설명이다. 이들 노래가 모두 우리말로 씌어 있다 했으니 그것은 우리의 노랫말을 적던 향찰식 표기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처럼 향찰로 표기되어 전승된 삼국속악은 그 장르적 성격이 향가와 어떻게 변별되는가? 흔히 향가를 정의할 때 광의로는 중국 시와 구별하여 우리나라의 시가 일반을 지칭하고, 협의로는 신라시대부터 고려초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된 이두식 문자료 표시된 시가를 이른다. 그렇다면, 광의로든 협의로든 이 삼국속악을 향가라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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