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민족신화 만들기의 흥미로운 정표 가운데 하나가 '주몽 단군 아들설'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일연은 '기이'편에서는 하지 않은 이야기를 '왕력'편에서 하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고구려 동명왕의 이름이 추몽인데 단군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일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몽신화를 기록하면서 '단군가'를 인용하여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부루라고 하였다. 이제 이 기록을 보니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사통하며 주몽을 낳았다고 한다. '단군기'에도 아들을 낳아 부루라고 했다 하니 아마도 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일 것이다"라는 해석을 덧붙인다. '삼국유사'보다 몇년 늦게 씌어지는 '제왕운기' 역시 '먼저 부여와 비류를 일컫네'라는 시구에 '단군본기'를 인용하여 주석을 달면서 "비서갑 하백의 딸과 혼인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부루"라고 적었다. 또 '동명본기'를 끌어와 부여의 왕 부루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산천에 제사를 드렸는데, 말이 곤연이라는 곳에서 큰 돌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돌 밑에서 금빛 개구리 모양의 아이를 얻어 금와라고 이름짓도 태자로 삼았다고 한다.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부루는 단군의 아들이고, 주몽의 이복형제이며, 동시에 부여의 왕이다. 관계가 상당히 혼란스럽다. 이는 고조선을 비롯한 고대사를 언급하는 다양한 자료들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결국 고조선과 고구려, 부여를 같은 핏줄로 묶으려는 의도, 다시 말해 준민족신화 만들기라는 기획의 결과로 보인다.
이러한 단군신화 재구성은 도가 계통의 문헌에도 계승되어 16세기 조여적의 '청학집'에 이르면 숙신, 부여, 말갈까지 모두 단군의 후예가 된다. 단군에 대한 민족적 자부심이 한층 고양된 형태라고 할 만하다. 그뿐 아니라 '청학집'에는, 환인인 진인이고 동방 선파의 비조로 그 선맥이 환웅-단군으로 이어지면서 대대로 백성을 교화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단군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부루는 하우가 치수의 마무리를 축하하기 위해 배설한 도산모임에 참여했고, 부여는 구이의 난을 토평했으며, 부우는 질병을 치료했고, 부수는 맹수를 다스렸다는 것이다. '삼국유사'의 단군신화와는 상당히 다른 신화로 재탄생한 셈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단군신화를 어떻게 읽었을까? 1396년 권근이, 새로 건국한 이씨 조선의 표전 문제, 즉 왕조가 바뀐 사실을 알리는 표전의 문구에 대한 명의 시비를 해명하는 문제로 남경에 갔다. 이때 황제가 조선의 역사에 대해 묻자 이에 대답하는 시를 지어 올리는데, 이 시의 주석에 단군신화가 언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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