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에는 여러 고대국가들이 명멸했고, 이들은 건국신화를 남겼다. 한반도와 그 북부지역에 등장한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비롯해 북부여의 해모수, 동부여의 금와, 고구려의 주몽, 나아가 백제까지 이어지는 부여계 건국신화, 이들과는 신성혼 형식이 다른 남쪽의 신라와 가락국 건국신화가 그것이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편년통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고려가 왕건의 출신을 신비화하는 건국신화 만들기를 시도했고, 조선 역시 '용비어천가'를 통해 유사한 기획을 보여준바 있다.
그런데 이런 고대, 중세 국가의 건국신화 제작은 관련 신화들을 건국의 목적에 맞춰 선택하거나 배제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는다. 하지만 전혀 다른 전승도 있다. 조선시대 승려 설암이 지은 기행문인 '묘향산지'를 보면 작나는 '제대조기'라는 문헌을 인용하여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 살았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와 교통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그가 요임금과 같은 해에 나라를 세워 우리 동방의 군장이 되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런 전승은 결국 단군신화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꿈과 환웅의 결합 화소는 선택되고 호랑의와 환웅의 결합 화소는 배제되어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이런 식의 통합과 배제의 과정은 단군신화에만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이런 신화통합을 통해 건국신화가 표명하려 한 것은 무엇보다 국조의 신성성이다. 우리 신화에서 국조의 신성성은 천신과 지신의 결합을 통해 주로 표현된다. 단군신화의 환웅은 천신 환인의 아들이고 웅녀는 땅의 신성을 대표하는 존재다. 따라서 양자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은 천지일체, 세계통합의 상징일 수밖에 없다. 주몽신화에서는 해모수와 유화가 천지를 대표하는 존재들이다. 신라 건국신화에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알 속에서 출현한 혁거세와 계룡이 낳은 알영이, 가락국 건국신화에서는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알 속의 수로와 바다를 건너온 허황옥이 각각 천지를 대표하는 존재들이다. 이들 국조의 신성성을 통해 건국신화는 국가의 존재를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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