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4 근대 민족신화로 재탄생한 단군신화 고려에서 조선까지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전승되던 단군신화는 조선이 서구 열강의 침입과 일본 제국주의의 위협에 놓이자 강력한 민족통합 담론으로 떠오른다. 이미 1895년부터 일본의 시라또리 쿠라끼찌, 나까 미찌요 같은 학자들은 단군신화를 일연이 만든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평가절하했지만, 그럴수록 단군신화는 고조선의 건국신화를 넘어 한반도와 요동지역 여러 종족의 기원에 놓인 위대한 민족통합의 신화로 인식되었다. 이런 인식의 고양에는 단군신앙운동이나 근대적 민족계몽운동이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민족의 위기를 우리 고유의 정신에서 찾자는 운동이 19세기말에 시작되었는데 평안도와 백두산을 중심으로 일어난 단군신앙운동 역시 그 일환이었다. 이 운동의 흐름 속에서 '환단고기'나 '규원사회'처럼 찬란한 단군시대의 .. 2023. 1. 16. 민족신화의 가능성 준민족신화 만들기의 흥미로운 정표 가운데 하나가 '주몽 단군 아들설'이다. '삼국유사'를 보면 일연은 '기이'편에서는 하지 않은 이야기를 '왕력'편에서 하고 있다. 일설에 따르면 고구려 동명왕의 이름이 추몽인데 단군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일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몽신화를 기록하면서 '단군가'를 인용하여 "단군이 서하 하백의 딸과 관계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부루라고 하였다. 이제 이 기록을 보니 해모수가 하백의 딸과 사통하며 주몽을 낳았다고 한다. '단군기'에도 아들을 낳아 부루라고 했다 하니 아마도 부루와 주몽은 배다른 형제일 것이다"라는 해석을 덧붙인다. '삼국유사'보다 몇년 늦게 씌어지는 '제왕운기' 역시 '먼저 부여와 비류를 일컫네'라는 시구에 '단군본기'를 인용하여 주석을 달면서 "비서갑.. 2023. 1. 15. 건국신화의 재인식 고려 이전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와 그 북부지역에 있던 여러 고대국가의 신화 가운데 고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끈 것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건국신화였다. 고구려 주몽의 신화가 주목받은 까닭은, 이규보가 '동명왕편' 서문에서 밝혔듯이, 우부애부도 아는 흥미로운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에 고구려 역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계몽기에 단재 신채호가 신라 중심의 역사서술을 비판하면서 부여, 고구려 계통의 역사를 '조선상고사'의 중심으로 삼은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모은 신화는 고조선의 단군신화였다. 이는 고조선이 고구려보다 앞선 나라, 한반도와 그 북부지역에 설립되었던 나라들의 기원에 해당하는 나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2023. 1. 14. 고대국가의 건국신화들 역사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에는 여러 고대국가들이 명멸했고, 이들은 건국신화를 남겼다. 한반도와 그 북부지역에 등장한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비롯해 북부여의 해모수, 동부여의 금와, 고구려의 주몽, 나아가 백제까지 이어지는 부여계 건국신화, 이들과는 신성혼 형식이 다른 남쪽의 신라와 가락국 건국신화가 그것이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편년통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고려가 왕건의 출신을 신비화하는 건국신화 만들기를 시도했고, 조선 역시 '용비어천가'를 통해 유사한 기획을 보여준바 있다. 그런데 이런 고대, 중세 국가의 건국신화 제작은 관련 신화들을 건국의 목적에 맞춰 선택하거나 배제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 2023. 1. 13.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