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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3

삼국시대의 한문학 삼국 초기에는 지배체제의 확립과 효율적 운영을 위해 문자가 필요했다. 주로 국가의 공식 역사서, 외교문서, 각종 금석문, 국내 정치 문서 등이 문자로 기록되었다. 특히 산문은 주로 서정적 내면을 표현하는 시 혹은 시가와 달리, 국가체제의 확립이나 외교문서의 작성 등, 공공적이고 실용적인 목적에 부합하며 이념성을 구현하는 방향에서 주로 창작되었다. 이에 비해 시양식은 일찍부터 창작되었고, 가악무와 분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의와 유희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가 점차 개인의 서정을 표현하는 쪽으로 변화해왔다. 산문창작은 대부분 정치, 외교적 필요성, 국가 위업의 선양과 체제정비 요구에 부응했으니, 역사서 편찬과 기념비 건립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와 함께 대중국 외교문서 작성과 국왕의 율령 반포 같은 국가의 공식행.. 2023. 1. 22.
건국신화의 재인식 고려 이전 제주도를 포함한 한반도와 그 북부지역에 있던 여러 고대국가의 신화 가운데 고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끈 것은 고조선과 고구려의 건국신화였다. 고구려 주몽의 신화가 주목받은 까닭은, 이규보가 '동명왕편' 서문에서 밝혔듯이, 우부애부도 아는 흥미로운 이야기였을 뿐만 아니라, 그 이야기에 고구려 역사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계몽기에 단재 신채호가 신라 중심의 역사서술을 비판하면서 부여, 고구려 계통의 역사를 '조선상고사'의 중심으로 삼은 까닭도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모은 신화는 고조선의 단군신화였다. 이는 고조선이 고구려보다 앞선 나라, 한반도와 그 북부지역에 설립되었던 나라들의 기원에 해당하는 나라로 인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 2023. 1. 14.
고대국가의 건국신화들 역사적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에는 여러 고대국가들이 명멸했고, 이들은 건국신화를 남겼다. 한반도와 그 북부지역에 등장한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비롯해 북부여의 해모수, 동부여의 금와, 고구려의 주몽, 나아가 백제까지 이어지는 부여계 건국신화, 이들과는 신성혼 형식이 다른 남쪽의 신라와 가락국 건국신화가 그것이다. 삼국시대 이후에는 '편년통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고려가 왕건의 출신을 신비화하는 건국신화 만들기를 시도했고, 조선 역시 '용비어천가'를 통해 유사한 기획을 보여준바 있다. 그런데 이런 고대, 중세 국가의 건국신화 제작은 관련 신화들을 건국의 목적에 맞춰 선택하거나 배제하고, 통합하는 과정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단군신화를 보면 알 수 있다.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 2023. 1. 13.